[푸드스캐너=송나리] 말차의 초록빛으로 물들었던 글로벌 카페 시장에 요즘 블랙 컬러가 번지고 있다. 뉴욕과 런던, 시드니 같은 도시의 카페에서 흑임자 음료가 새로운 대세로 떠오른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미국의 한 식품산업 리서치 기관은 2026년을 대표하는 컬러로 블랙을 꼽았으며, 리뷰 플랫폼인 옐프가 발표한 ‘2026 음식•음료 트렌드 전망’에서도 흑임자를 활용한 메뉴가 전반적으로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K-카페에서 시작된 흑임자라떼 열풍

흑임자 자체는 사실 낯선 식재료가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오래전부터 디저트나 음료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흑임자라떼, 즉 우유와 커피 그리고 흑임자 크림이 어우러진 메뉴는 한국 카페에서 먼저 자리 잡은 스타일이다.
전문가들은 흑임자음료의 글로벌 트렌드에 K카페의 역할이 컸다고 설명한다. 한국식 카페 문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국내에서 볼 수 있던 흑임자라떼 메뉴가 자연스럽게 해외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 SNS에서는 ‘Korean black sesame latte’, ‘K-style sesame latte’ 같은 키워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도의 한 영문 일간지 역시 “한국 음식과 카페 문화의 영향으로 흑임자 라떼가 글로벌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왜, 흑임자라떼일까?

그렇다면, 왜 하필 흑임자일까? 해당 질문의 답은 의외로 말차에서 찾을 수 있다. 살펴보면 말차와 흑임자는 유사한 점이 많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색’이다. 말차가 선명한 초록빛으로 카페 음료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면, 흑임자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시선을 끈다. 깊고 묵직한 검은색. 단순하지만 강렬한 이 색감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최근 카페 트렌드에서 ‘비주얼’이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만큼, 흑임자의 색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건강한 이미지’라는 공통점도 있다. 말차가 항산화 성분과 자연 친화적인 이미지로 사랑받아 왔다면, 흑임자 역시 안토시아닌 성분이 포함돼 있어 몸에 좋은 식재료로 인식돼 왔다. 업계에서도 흑임자의 인기를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말차 이후 이어지는 ‘웰빙 트렌드’의 흐름으로 해석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맛 또한 마찬가지다. 흑임자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풍미를 갖고 있어, 쌉쌀한 말차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게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우유와 섞이면 크리미한 질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라떼로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오히려 ‘낯섦’이다. 흑임자는 동아시아에서는 익숙한 식재료지만 서구권에서는 아직 새로운 맛에 가깝다. 이미 말차를 통해 아시아 식재료에 대한 경험치를 쌓은 소비자들에게 흑임자는 다음 단계의 ‘새로운 발견’처럼 느껴질 수 있다.
흑임자의 정체, 검은깨

사실 흑임자의 정체는 바로 검은깨다. 검은깨는 예로부터 몸에 좋은 식품으로 여겨져 왔다. 신라의 화랑들이 수련 과정에서 먹었던 7가지 곡식 중 하나였고,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불로장생 식품’으로 불리며 귀하게 다뤄졌다. 오늘날 흑임자가 건강 식재료로 다시 주목받는 흐름 역시, 이런 전통적인 인식과 맞닿아 있다.

흑임자에는 비타민 E를 비롯한 다양한 항산화 성분이 함유돼 있다. 우리 몸은 에너지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활성산소를 만들어내는데, 이 물질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세포를 손상시키고 노화나 각종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흑임자의 짙은 색을 만드는 안토시아닌 역시 이러한 항산화 작용과 관련해 주목된다. 안토시아닌은 식물의 검붉은 색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항산화 물질로, 일부 실험 연구에서는 노화 예방과 신경세포 손상 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실제로 국내 치매제어기술개발융합 연구단은 동물실험을 통해 에탄올로 인한 뇌 해마 부위의 세포 파괴를 안토시아닌이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생후 17.5일 된 흰쥐 태아의 뇌에 에탄올을 주입했을 때 에탄올이 해마의 신경세포 사멸을 유도했다면, 안토시아닌을 투여하자 세포 사멸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한방에서 약깨라 불리는 흑임자

흑임자에는 칼슘을 비롯한 다양한 미네랄도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특히 칼슘은 100g 기준 약 1100mg으로, 들깨(441mg)와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철분과 마그네슘까지 함께 포함돼 있어 뼈 건강은 물론 근육과 신경 기능 유지에도 일정 부분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장운동을 돕고 소화 기능 개선에 기여하는 식이섬유 역시 풍부한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콜레스테롤 개선부터 간 건강까지

흑임자에서 특히 주목받는 성분은 리그난 계열의 ‘세사민’이다. 깨에 특유하게 존재하는 이 성분은 항산화 작용을 중심으로 다양한 생리활성과의 연관성이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관련 논문에 따르면 세사민은 지방산과 콜레스테롤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된다. 국제 학술지 Nutrients에 게재된 중국 연구팀의 문헌 고찰에서는 세사민이 HDL 수치를 높이고 LDL 수치를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질 균형 조절을 통해 동맥경화 예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간 건강과의 연관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중국에서 진행된 동물 실험에서는 세사민이 간 손상 지표인 ALT, AST, 빌리루빈 수치를 낮추고, 항산화 작용을 통해 염증 반응을 완화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다만 이러한 결과는 대부분 동물 실험이나 세포 수준에서 확인된 것으로,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가 나타난다고 단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흑임자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기능성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검은깨와 참깨의 차이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흑임자, 즉 검은깨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참깨와 무엇이 다를까? 결론부터 말하면, 검은깨 역시 참깨의 한 종류다. 참깨 가운데 껍질 색이 검은 품종을 검은깨라고 부르며, 일상적으로 접하는 참깨는 대부분 흰깨에 해당한다.
맛과 활용도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흰깨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풍미로 무침이나 볶음 등 한식 전반에 널리 사용된다. 반면 검은깨는 보다 진한 풍미와 은은한 쌉싸름함이 특징으로, 죽이나 라떼, 디저트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메뉴에 주로 활용된다.
그렇다면 영양적인 차이도 있을까. 완전히 다른 식품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구성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검은깨는 껍질에 색소 성분이 포함돼 있어 안토시아닌과 같은 항산화 물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세사민 등 리그난 함량도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이 보고된다.
칼슘 함량 역시 검은깨가 더 높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지만, 재배 환경이나 가공 방식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결국 두 식재료는 우열의 문제라기보다, 풍미와 특성에 따라 용도가 구분되는 식재료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이디야의 ‘궁중박 시그니처 라떼’

이디야커피는 국립중앙박물관 입점을 기념해, 박물관 특화 메뉴로 흑임자를 전면에 내세웠다. 대표 메뉴인 ‘궁중박 시그니처 라떼’는 검은깨 특유의 고소한 풍미를 라떼에 자연스럽게 녹여내 전통적인 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디저트 메뉴로는 증편 반죽에 흑임자 가루를 더한 ‘흑임자 증편’도 함께 선보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K-컬처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만큼, 흑임자 라떼 역시 이곳을 계기로 대중적인 메뉴로 확산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흑임자 라떼를 중심으로 시작된 흐름이 흑임자죽이나 흑임자떡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 음식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초록빛 말차가 전 세계 카페의 풍경을 바꿔 놓았듯, 흑임자를 활용한 한 끼 식사와 간식 역시 ‘웰빙 음식’으로 자리 잡는 순간을 기대해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