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요리 프로그램 속 ‘랩 조리’, 정말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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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요리 프로그램 속 ‘랩 조리’, 정말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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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2
김용준김용준
FOOD SCANNER
김용준
김용준

[푸드스캐너=김용준] 최근 인기 요리 예능 프로그램들에 잇따라 등장한 조리 장면이 식품 안전 관점에서 일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해당 방송들에서 셰프들은 식재료를 플라스틱 랩으로 감싼 뒤 이를 끓는 물에 넣어 가열하거나 찜기에 올려 조리하는 방식을 선보였는데요. 이 장면은 별도의 설명이나 주의 문구 없이 그대로 전파를 탔고, 결과적으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전문 셰프도 사용하는 조리법’이라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요리 프로그램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시청자들의 식습관과 조리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입니다. 특히 유명 셰프의 조리법은 검증된 전문 기술이자 가정에서도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랩으로 식재료를 감싼 채 고온에서 직접 가열하는 장면이 아무런 보충 설명 없이 방송되었다는 점은 오락방송으로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랩은 플라스틱류, 고온고습에 부적합해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식품용 랩은 폴리에틸렌(PE) 또는 폴리염화비닐(PVC) 계열 소재로 제작됩니다. 주로 석유화학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합성수지에 해당하며 ‘플라스틱(plastics)’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소재에 해당합니다.

이들 제품은 냉장 보관, 식품 덮개, 혹은 전자레인지에서의 단시간 가열을 주된 사용 조건으로 설계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끓는 물이나 찜기처럼 100℃를 넘나드는 고온·고습 환경에서 장시간 직접 가열되는 상황은 대부분의 가정용 랩이 전제로 하지 않는 사용 조건에 해당합니다. 특히 PVC 랩의 경우 재질의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소제와 같은 첨가제가 사용되는데, 고온 환경에서는 이들 물질이 식품으로 미량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여러 연구와 규제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OECD-EFSA-CPSC 주의



국제적으로 플라스틱 식품 용기 및 포장재의 고온 사용에 대해 주의가 필요하다는 권고는 반복되어 왔습니다. 특히 지방 함량이 높은 식재료나 산성 식품은 플라스틱 성분의 이동을 촉진할 수 있는 조건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PVC 가소제인 DEHA(비스(2-에틸헥실)아디페이트)에 대한 평가 자료에서 PVC 식품 포장 필름에서 해당 물질이 식품으로 이행될 수 있으며, 이 이행량은 식품의 지방 함량, 접촉 시간, 그리고 온도 조건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이행량이 커지는 현상이 관찰되었으며, 이는 저온 보관과 고온 조리가 동일한 안전성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유럽식품안전청(EFSA) 역시 가소제의 식품 이행과 관련한 과학적 의견서를 통해 DEHA를 포함한 특정 가소제가 지방이 많은 식품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검출되는 경향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EFSA는 이러한 현상이 가소제의 지용성 특성과 관련되어 있으며, 식품의 성상과 접촉 조건에 따라 인체 노출 수준이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에서도 DEHA 관련 보고서에서 PVC 필름과 식품의 접촉 과정 중 가소제 이행이 발생할 수 있고, 전자레인지 사용이나 온도 상승과 같은 조건은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 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조리 안전성의 의미



식품 안전 분야에서 중요한 점은 ‘식품 접촉 가능’과 ‘고온 가열 조리에 안전함’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식품 접촉용으로 허가된 소재라 하더라도 이는 특정 조건과 사용 범위 내에서의 안전성을 의미할 뿐입니다.

고온에서의 장시간 가열, 특히 수분과 열이 동시에 작용하는 환경에서는 플라스틱 소재의 화학적 안정성이 저하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미량의 화학 성분이 식품으로 용출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잘못된 인식 확산 우려 있어



물론 방송에 등장한 해당 조리 장면이 즉각적인 건강 피해를 유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급성 독성이 아니라, 잘못된 인식의 대중 확산 가능성에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방송을 통해 해당 조리법을 안전하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인식하고, 이를 일상적인 가정 조리에서 반복적으로 따라 하게 될 경우 불필요한 화학물질 노출이 누적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더욱이 방송 제작 환경과 일반 가정의 조리 환경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습니다. 전문 주방에서는 고온 조리에 적합한 특수 내열 필름이나 수비드 전용 백 등 일반 소비자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소재를 사용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사용된 랩의 재질, 내열 한계, 안전 조건 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시청자는 화면 속 ‘랩’을 곧바로 일반 가정용 랩과 동일시하게 되며, 이는 오해를 낳기에 충분한 상황입니다.


국민 건강 고려한 노출 중요



요리 예능 프로그램은 창의적인 조리 기법과 미학적 표현을 보여주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큽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공성이 강한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라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책임 또한 수반됩니다. 과거에도 생식 열풍, 극단적인 식단 요법, 특정 조리 도구나 식재료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방송을 통해 확산되었다가, 뒤늦게 건강 논란으로 이어진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방송 콘텐츠가 대중의 식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번 사례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랩으로 식재료를 감싸 고온에서 가열하는 방식은 일부 전문 조리 환경이나 특수 소재를 전제로 할 경우 제한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 모르나, 이를 별도의 설명이나 아무런 맥락 없이 대중에게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용 랩을 동일한 방식으로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됩니다.


식품 관련 안전 환기 필요한 때



결론적으로, 랩을 이용해 식재료를 감싼 채 끓이거나 찌는 조리 방식은 과학적·규제적 관점에서 일반 가정에 권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방송에서 이러한 장면을 다뤘다면 사용된 소재의 특성, 내열 한계, 가정에서의 대체 가능한 안전한 조리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이 가미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리 예능이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시청자의 건강 인식과 식생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사례가 콘텐츠 제작과 소비 모두에 있어 다시 한 번 ‘식품 안전’이라는 기준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람해 봅니다.  

FOODDITOR
김용준
김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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