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스캐너=이지민] "소비자는 자신이 섭취하는 식품에 어떤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건강과 안전을 전제로 한 기본적인 권리라는 점에서 여러 소비자·보건 단체들이 반복적으로 강조해 온 메시지인데요. 미국 환경실무그룹(EWG), 컨슈머리포트, 미국공익연구그룹(U.S. PIRG) 등은 식품에 사용되는 첨가물 및 화학물질, 알레르기 유발 성분, 가공 과정 전반이 소비자에게 충분히 공개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들 단체들은 “정보는 곧 안전이며, 안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영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캠페인 차원을 넘어 현재 미국 식품 규제 체계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쟁점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연방 차원의 표시 제도, 주(州) 단위의 규제 강화 움직임, 그리고 업계의 반발이 맞서는 상황 속에서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바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먹고 있는가" 입니다.
왜 ‘알 권리’가 중요해졌을까

현대의 식품 시장은 소비자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포장 전면에는 ‘저지방’, ‘무설탕’, ‘천연’과 같은 문구가 강조되지만, 실제로 어떤 성분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됐는지까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EWG는 식품 라벨이 모든 위험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며, 일부 정보는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처리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EWG는 1,500개 이상의 브랜드에서 출시된 8만여 개 가공식품을 분석하며 영양 성분뿐 아니라 첨가물, 가공 수준, 잠재적 오염 가능성까지 함께 평가하기도 했는데요. 그 결과 조사 대상 식품의 약 58%가 첨가당을 포함하고 있었고, 약 46%는 ‘천연 향료’ 또는 ‘인공 향료’라는 포괄적 표현만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소비자가 실제 화학 성분의 정체를 즉각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일부 식품에는 포장재에서 유래될 수 있는 비스페놀A(BPA)나 비소·수은과 같은 중금속, 농약 잔류물, 항생제 잔류 가능성 등 다양한 잠재적 위해 요소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표시 체계만으로는 이러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소비자는 열량이나 탄수화물 함량은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장기적 건강 위험과 연결될 수 있는 요소에 대해서는 충분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알 권리’는 단순한 정보 제공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을 인지할 권리와 직결된 사안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먹는 식품이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지, 성장기 아동이나 특정 건강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세계 각국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식품 정보는 생명과 직결되는 영역일수도..

대표적으로 식품 알레르기는 알 권리 논의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분야입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소비자가 피해야 할 알레르기 유발 성분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표시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관련 법률을 통해 주요 알레르겐이 포함된 가공식품에 대해 원재료 명칭을 분명히 표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우유, 달걀, 땅콩, 견과류, 생선, 갑각류, 밀, 대두, 참깨 등이 이에 해당하며, 소비자가 즉시 알아볼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요구합니다. 성분표 옆에 ‘Contains’ 문구를 별도로 표기하거나 괄호를 활용해 원재료 유래를 명시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FDA는 최근 지침을 통해 알레르겐의 정의 역시 보다 넓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중증 알레르기 환자가 오해 없이 위험 성분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인데요. FDA는 부적절한 알레르기 표기가 소비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며 동시에 기업에 큰 법적·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알레르기 정보는 ‘알면 좋은 정보’가 아니라, 즉각적인 안전과 직결되는 필수 정보로 다뤄질 수 있습니다.
첨가물과 화학물질로 확대된 '알 권리'

최근 소비자 단체들이 강조하는 ‘알 권리’는 알레르겐을 넘어 식품첨가물, 가공 보조제, 포장재 유래 화학물질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공중보건 단체들은 특정 인공 색소와 보존제, 안정제 등에 대해 발암 가능성이나 호르몬 교란, 아동 행동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고 설명합니다.
일부 물질은 유럽연합(EU) 등에서 이미 규제를 받고 있거나 단계적 퇴출이 진행 중이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사용이 허가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같은 사례는 소비자들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어린이 간식이나 고가공 식품에서의 노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입니다.
참고로, 미국 현지에서 이러한 논의는 주 단위 입법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주에서는 연방 차원의 금지 여부와 관계없이, 위해 가능성이 보고된 물질을 선제적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거나 통과시키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소비자에게 위험 가능성을 명확히 알리겠다는 선언이자 투명성 확대의 한 방식으로 해석됩니다.
투명한 정보 공개를 둘러싼 갈등

정보 공개를 확대하려는 흐름과 동시에 이를 완화하거나 우회하려는 움직임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EWG는 최근 식품업계 지원 단체들이 ‘투명성’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주 단위 규제 강화를 저지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과거 GMO 표시를 둘러싼 논쟁 역시 유사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소비자 다수는 GMO 사용 여부를 알고 싶다고 응답했지만, 업계는 표시 의무 강화에 반대하며 간접적 정보 제공 방식이 도입되기도 한 것이죠. 이에 대해 현지 소비자 단체들은 정보 접근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제기해 왔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입니다. 기업은 모든 정보를 알고 있지만, 소비자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게 되는 구조가 건강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한다는 것입니다.
“정보는 선택권이며, 선택권은 권리”

전문가들은 식품 투명성 논쟁을 단순한 표시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선택권을 가지는가의 문제로 봅니다. 소비자들이 각자의 건강 상태와 가족 구성에 따라 식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정보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제 ‘내가 먹는 것을 아는 일’은 개인의 책임을 넘어 사회가 함께 보장해야 할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식품 라벨의 투명성은 더 이상 일부 소비자의 요구가 아니라, 다양한 생활 조건과 건강 상태를 가진 모두에게 점차 중요한 공공의 문제로 부상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게 무언가를 바꾸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그리고 기업들이 함께 노력하고 귀 기울인다면 갈수록 보다 건강한 먹거리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