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스캐너=양민영] 이상하게 연말연시만 되면 술 약속이 부쩍 많아집니다. 송년회 일정이 하나둘 캘린더를 채우고, ‘올해도 고생했으니까’,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이니까’라는 핑계로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늘어나죠. 이런 시즌에 특히 유의해야 하는 것이 바로 간 건강인데요. 간은 우리가 마신 술의 양과 빈도, 그날의 식사까지 고스란히 기억합니다. 문제는 그 신호가 대부분 조용하다는 점이에요. 피곤함이 쉽게 가시지 않거나 속이 더부룩한 날이 잦아졌다면 이미 간은 과부하 상태일 수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의 2025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한 달에 1회 이상 음주한 성인의 비율은 57.1%로 절반을 훌쩍 넘었습니다. 특히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성은 소주 7잔 이상, 여성은 5잔 이상을 주 2회 이상 마시는 고위험 음주율은 12%에 달하는데요. 여기에 ‘연말연시’라는 명분이 더해지면 이 숫자는 더욱 높아집니다. 이럴 때, 조용히 다가오는 위험이 바로 간암입니다. 통증도, 분명한 경고도 없이 간세포 안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죠. 그래서 더 늦게 발견되고, 더 치명적입니다.
침묵의 장기 ‘간’

간은 흔히 ‘침묵의 장기’라 불립니다.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거의 없어서 상당 부분 손상돼도 별다른 신호를 보내지 않아요. 그래서 간암 환자 상당수는 증상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건강검진으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간암은 폐암, 췌장암과 함께 치료가 가장 어려운 암으로 분류되는데요.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간암의 5년 상대 생존율은 39.4%로, 전체 암 평균 생존율인 72.9%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입니다.
간암이 발생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과음과 만성 간질환입니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암은 대부분 정상 간이 아닌, 만성 간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발생한다”라고 말하며, 과체중과 복부 비만, 당뇨병 같은 대사 이상이 동반되면 간암 위험은 더 높아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간암 환자 10명 중 9명은 진단 시 이미 B·C형 간염, 간경변, 지방간 등 기저 간질환을 갖고 있다고 해요. 간암은 멀쩡한 간보다 이미 지친 간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간암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인 과음을 피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간염·간경변·지방간 등의 간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안전한 음주는 없다

연말연시 식탁을 떠올려 봅시다. 식탁 위에는 기름진 안주, 달콤한 디저트, 그리고 술이 가득하죠. 문제는 이 조합이 지방간을 만들기 가장 좋은 환경이라는 점이에요. 지방간은 단순히 ‘지방이 조금 낀 상태’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방간염, 간 섬유화, 간경변을 거쳐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미국암학회는 장기간 과음이 지방간과 알코올성 간염, 간경변증을 거쳐 간암으로 이어지는 대표적 경로라고 밝히며, 과음 패턴이 잘못되면 간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 증가 및 간암 발생률 상승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마셔야 위험한 걸까요? 전문가들의 답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안전한 음주는 없다는 것. 알코올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 중 하나로, WHO는 ‘건강한 음주의 기준은 마시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며, 알코올을 섭취해야 할 경우 남성은 회당 40g(약 소주 4잔) 이내, 여성은 20g(약 소주 2잔) 이내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는데요. 세계암연구기금과 국제암연구소의 보고서에도 하루 약 45g 이상의 알코올(술 3잔 이상)은 간암 위험을 높이는 확실한 요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하루 소주 두세 잔 정도에 해당하는 알코올 섭취량만으로도 간암 위험은 눈에 띄게 높아지기 때문에, ‘조금만 마시면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오히려 더 위험을 키울 수 있습니다.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암 예방을 원한다면 무조건 금주해야 하며, 만약 불가피하게 술을 마셔야 한다면 식사를 제대로 한 뒤 술을 마셔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환자들에게 ‘적당한 음주’는 환상이며, 간 건강을 지키려면 철저한 금주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어요.
술만 문제일까?

최근에는 생활 습관성 간암의 비중 또한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음주뿐 아니라 비만, 당뇨, 고지방·고당 식단이 결합된 대사 관련 지방간(MASLD)이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특히 최근 연구들은 술과 잘못된 식습관이 함께할 때 그 위험이 증폭된다고 말합니다. 서구식 식단, 가공육, 튀김, 설탕이 많은 음식을 즐기면서 술을 마시는 경우, 알코올성 간질환과 간암 위험이 훨씬 가파르게 증가한다고 해요.
미국 MIT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Cell’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고지방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간세포는 원래 맡고 있던 해독·대사 기능을 뒤로 미루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 모드’를 우선적으로 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간세포가 성숙한 상태에서 미성숙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듯한 변화가 나타났고, 이런 상태의 세포는 이후 돌연변이가 생겼을 때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는데요. 연구진은 고지방 식단이 간에 지방만 쌓이게 하는 게 아니라, 간세포의 유전자 발현 자체를 변화시켜 암에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고 밝혔습니다.
간 건강에 좋은 음식은?

우리가 먹은 모든 음식은 결국 간으로 들어옵니다. 다시 말해, 간은 좋든 나쁘든 우리가 선택한 식탁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떠안는 장기예요. 그래서 간에 문제가 생기면 ‘약보다 먼저 식사를 고쳐야 한다’라는 말이 따라옵니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질환 환자에게 음식이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든 영양분이 간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처리 과정에서 간에 부담이 되는 성분이 생기기도 하고 그것이 쌓이기도 한다.” 즉, 무엇을 먹느냐가 곧 간암 예방 및 치료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건데요. 간이 좋아하는 식사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해요. 덜 자극적이고, 덜 가공되고, 자연에 가까운 음식이죠.

지중해식 식단
지중해식 식단은 포화지방과 단순당이 적고 항산화 물질, 식이섬유, 건강한 지방류(MUFA, 오메가-3)가 풍부한 구조입니다. 이런 특성 덕분에 간 건강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를 찾아볼 수 있어요.
‘Journal of hepatology’에 등록된 이탈리아, 미국, 그리스 공동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지중해식 식단을 잘 준수하는 것이 간세포암종(간암)을 예방할 수 있으며, 간암 발생 위험과 반비례한 것으로 보고되었는데요. 과일·채소·견과류 등의 항산화 영양소 섭취와 불포화지방 중심의 식단이 암 생성 과정에서 DNA 손상, 산화스트레스, 염증 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되었어요.
올해 MDPI에 게재된 스페인 연구팀의 대사 관련 지방간(MASLD) 환자를 대상으로 한 논문에 따르면, 2년간 지중해식 식단을 잘 지킨 그룹에서 간 효소 수치(ALT, AST, GGT)와 지방간 지표가 크게 개선되었으며, 간 내 지방 축적도 감소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연구 결과가 MASLD 환자의 간 건강을 개선하고, 간 관련 합병증을 예방하는 효과적인 비약물적 전략으로서 지중해식 식단이 뒷받침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Frontiers에 실린 스페인 연구팀의 대규모 5년 종단 분석에서도 지중해식 식단을 꾸준히 따른 사람들에게서 간 지방 축적 정도가 장기적으로 낮아졌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식이섬유
잡곡과 섬유소는 소화가 잘되도록 돕는 걸 넘어서 간 건강과 대사 기능, 암 예방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현미, 보리, 수수, 콩, 팥처럼 식이섬유가 풍부한 곡류는 간에 지방이 쌓이는 것을 막아주죠.
2021년 Nature Communications에 게시된 미국 및 중국 공동 연구팀의 통곡물과 식이섬유 섭취와 간암 질환의 연관성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식이섬유와 통곡물 섭취가 간 건강에 긍정적인 것으로 보고되었는데요. 식이섬유를 많이 섭취한 그룹은 간암 위험이 약 31%, 만성 간질환(CLD) 사망률이 약 63% 감소하며, 전체 만성 간질환 위험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Frontiers에 등록된 중국 상하이 박동 병원의 무작위 대조 시험에서도 하루 24g 이상의 식이섬유를 섭취했을 때, 지방간 환자의 간 섬유화 지표 개선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었어요.

흰색 계열의 과일 & 채소
국제 학술지 ‘Nutrition Research’에 게재된 국립암센터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2007-2021년 국가암검진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암 검진 코호트’ 참여자 11,286명을 평균 8년간 추적 관찰했을 때, 과일과 채소의 총 섭취량이 많을수록 위장관암(식도, 위, 소장, 간, 췌장, 대장암) 발생률이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흰색 계열의 과일과 채소를 하루 188g 이상 섭취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암 발생 위험이 36% 낮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즉, 항염·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사과·배·바나나 등의 흰색 과일과 무·양파·마늘·콜리플라워·양배추 등의 흰색 채소를 식단에 포함하면 간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겁니다. 색깔만 기억해도 간 건강을 지키는 식탁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지 않나요?

오메가-3
오메가-3 지방산은 간 지방 축적 감소와 중성지방 감소, 염증 조절에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에 등록된 중국 연구팀의 메타 분석에 따르면, 오메가-3 지방산, 특히 EPA와 DHA가 간 내 지방과 혈중 중성지방 농도를 낮추는 데 유의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특히 EPA와 DHA 보충은 단순 지방간뿐 아니라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NAFLD) 환자에서도 간 지방이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2022년 인도 연구팀의 논문에서는 오메가-3가 STAT3 활성화를 차단해 간암 세포의 생존 신호를 억제하고, 결과적으로 세포 자멸을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커피
커피가 간암 위험 감소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미국 국립 보건원에 등록된 이탈리아 연구팀의 메타 분석에 따르면,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간세포암 위험이 약 40%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연구진은 해당 연구 결과와 함께 커피가 간 효소와 간경변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며, 간암 발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또,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에 게재된 미국 연구팀의 다민족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커피 소비 증가가 간세포암 위험을 줄여주는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커피를 마신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을 비교했을 때, 하루에 2-3잔의 커피를 마신 사람들은 간세포암 위험이 38%, 4잔 이상을 마신 사람들은 그 위험이 4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특히, 하루에 2-3잔의 커피를 마신 사람들은 만성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46% 감소했으며, 4잔 이상을 마신 사람들은 71% 감소했습니다.
‘Hepatoma Research’에 실린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교의 연구에서도 커피 소비가 간암 위험과 반비례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는데요. 커피 섭취량이 적거나 전혀 없는 그룹에 비해 커피 섭취량이 가장 높은 그룹에서 간세포암 위험이 최대 약 72% 감소하는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
간을 위한 선택

간암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잦은 술자리, 기름진 식탁 등 건강하지 않은 생활 습관이 쌓여 발생하죠.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 조용해서, 대부분은 알아차릴 기회를 놓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간은 우리가 바꾸는 선택에 꽤 솔직한 장기이기도 합니다. 연말연시의 술자리를 모두 피할 수는 없겠지만 한 잔을 덜 마시고, 식탁을 가볍게 조정하고, 음주 후에는 쉬어주는 것만으로도 간이 충분히 숨을 고를 수 있다는 거예요. 지중해식 식단, 식이섬유가 풍부한 곡물, 흰색 과일과 채소, 오메가-3, 그리고 하루 몇 잔의 블랙커피까지. 특별히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과 내일의 식사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선택들로 말이죠.
간은 아프다고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더 먼저 돌봐야 하는 장기입니다. 혹시 최근 들어 피로가 쉽게 쌓이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그 신호를 흘려보내지 마세요. 지금의 선택이 앞으로 나의 간 건강을 결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