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스캐너=양민영] 가을만 되면 이유 없이 센치해지는 분들 많으시죠? 이상하게 아무 일도 없는데 마음이 허전하고, 괜히 예전 사진을 들춰보게 되고, 이유 없이 눈물이 맺히기도 하는데요. 이 감정, 실제로 몸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보내는 생리적 신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셨나요?
기온이 떨어지고 해가 짧아질수록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원하게 되고, 자연스레 움직임과 활동이 줄어들면서 우울감이 깊어집니다. 게다가 가을엔 명절 후 스트레스, 수능 시즌 압박감, 연말 피로감 등 심리적인 요인도 겹치죠.
그러니까 요즘 유난히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우울하다면? 계절 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을을 탄다는 건 몸이 리듬을 잃은 것

가을철 우울감은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불리는 의학적 현상으로 분류됩니다. 이 시기에는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우리 몸의 생체리듬이 흔들리기 시작하는데요.
햇빛이 줄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감소하고, 반대로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의 분비가 늘어납니다. 그 결과, 몸이 자꾸 졸리고, 에너지가 떨어지며, 기분도 쉽게 가라앉게 되죠.
이런 계절성 우울증은 특정한 성격의 문제나 의지의 부족으로 겪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20-30대 여성, 수험생, 갱년기 여성, 노년층 등 호르몬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이 겪는 비율이 높아요.
햇볕 샤워가 필요한 이유

세로토닌은 우리가 행복함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체내 트립토판은 햇볕을 받으면 세로토닌으로 전환되는데, 가을엔 일조량이 줄면서 햇볕 자극이 줄어드는 탓에 세로토닌 생성량이 뚝 떨어지게 됩니다. 동시에 멜라토닌은 늘어나면서 수면 주기가 흔들리고, 결국 이유 없이 피곤하거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현상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전문가들은 가을철 우울감을 완화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빛에 노출되는 것을 꼽습니다. 하루에 30분 이상 햇볕을 쬐면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되고, 비타민 D 합성도 촉진되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고 하는데요.
낮 동안에는 커튼을 활짝 열고, 창가나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출퇴근길에 10분 정도 산책하거나 점심시간에 짧게 걷는 것도 좋아요.
음식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

음식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음식의 염증 유발성 정도는 우울증 위험과 연결되는데요. 가공식품·정제 탄수화물·포화지방 중심의 식단은 염증을 키우고, 이 염증이 뇌의 감정 회로를 자극해 우울감을 높일 수 있습니다.
지난해 발표된 DII(식이 염증 지수) 연구에 따르면 DII 점수가 높을수록 우울증 위험이 증가하며, DII와 우울증 위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항산화 식품과 무기질이 풍부한 음식은 감정의 밸런스를 잡아주는데요. 지난해 발표된 연구에서는 칼륨·나트륨·인 등 무기질 섭취량과 우울증 유병률 사이에 역상관 관계가 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활용한 동아대 의과대학 연구팀은 한국에서는 칼륨·인·나트륨 섭취가, 미국에서는 칼륨·철·아연의 섭취가 우울증 위험 감소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 두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칼륨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확인되었어요.
기분을 바꿔줄 식단

그렇다면 가을철 기분이 가라앉을 때, 어떤 음식을 챙겨 먹으면 좋을까요? 일상에서 부담 없이 챙길 수 있는 식품부터 살펴 봅시다.
시금치
녹색 잎채소에는 엽산을 비롯한 여러 비타민과 무기질이 들어 있습니다. 엽산은 DNA 합성과 세포 기능 유지에 필요한 영양소로, 신경계 기능과 관련된 대사 과정에도 관여하는데요. ‘행복 비타민’이라 불릴 만큼 우울감 완화에 효과적이에요.
그중 시금치는 체내에서 S-아데노실메티오닌(SAMe) 합성을 돕는 엽산이 매우 풍부한 식품입니다. 시금치 100g에는 성인 하루 권장량의 35%에 달하는 엽산이 들어 있어요. SAMe는 세로토닌과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합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우울한 감정에 대한 완충막 역할을 해줄 수 있답니다.

베리류
블루베리와 딸기 같은 베리류에는 항산화 물질과 폴리페놀이 많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코르티솔이 과하게 분비되면 뇌의 해마 영역이 영향을 받아 감정 조절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베리류를 먹는다면 그런 부작용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어요.
바나나
바나나는 세로토닌 합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트립토판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습니다. 트립토판은 뇌에서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으로 전환되어 우울감 완화와 수면 질 개선에 도움을 주죠. 또 비타민 B6와 마그네슘이 풍부해 스트레스와 피로를 줄이는 데에도 좋습니다.

연어·고등어·우유·버섯
비타민 D는 햇빛이 줄어들면 부족해지기 쉽습니다. 비타민 D가 부족해지면 세로토닌 및 기타 신경전달물질 균형이 흐트러질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비타민 D가 함유된 등푸른 생선, 버섯류, 유제품 등의 식품을 보충하면 도파민과 세로토닌 생성을 촉진할 수 있어요.
발효식품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감정 건강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연구가 늘고 있죠? 요구르트, 김치 등의 발효식품에 풍부한 프로바이오틱스는 장내 염증을 낮추고, 기분 조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잠시 쉬어가는 계절

가을은 일상의 리듬이 조금씩 달라지는 계절입니다. 이는 곧, 우리 몸과 마음도 그 변화에 영향을 받기 쉬워질 수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고, 규칙적으로 잠을 자고, 우울감을 완화해주는 식사를 챙기는 습관이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가을을 탄다는 건 결국 나를 돌보라는 신호일지도 몰라요.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제때 돌봐주는 것, 그것이 가을철 마음 관리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