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스캐너=송나리] 마트 채소 코너를 서성이다 보면 유독 눈길을 끄는 채소가 있다. 매끄러운 표면에 짙은 보랏빛을 두른 가지다. 색은 이렇게 매력적인데, 장바구니에 담으려니 망설여진다고?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인터넷 설문조사 서비스 패널나우가 3만 8,3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가지는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채소 1위’를 차지했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호불호가 갈리는 주된 이유는 특유의 물컹한 식감이다. 젓가락으로 집으면 축 늘어지는 그 느낌이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감 하나로 외면하기에는 아깝다. 그 짙은 보랏빛 속에 제법 알찬 영양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성분을 품고 있고, 어떻게 먹으면 그 영양을 더 잘 챙길 수 있는지 알고 나면 가지가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 모른다.
보랏빛 껍질의 반전

사실 가지의 보랏빛에는 이유가 있다. 가지는 강한 빛과 자외선 같은 환경 스트레스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색소를 만들어내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안토시아닌’이다. 블루베리, 포도, 자색 양배추의 붉거나 보라색을 만드는 안토시아닌은 대표적인 항산화 성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항산화 성분이 필요할까? 우리의 몸은 숨을 쉬고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활성산소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활성산소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세포막을 공격하고, 산화 손상과 염증 반응에 관여할 수 있는데, 안토시아닌은 이런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가지 껍질에 들어 있는 ‘나수닌(Nasunin)’도 안토시아닌의 일종으로, 국제학술지 Toxicology에 발표된 연구에서 나수닌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능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쥐의 뇌 조직을 이용한 실험에서도 세포막을 이루는 지방 성분의 산화를 억제했다. 세포막이 활성산소로부터 손상되는 것을 막아줄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여기에 클로로겐산을 비롯한 다양한 페놀 화합물도 가지의 항산화 능력에 힘을 보탠다.
혈관 건강의 숨은 카드

이러한 항산화 작용은 혈관 건강과도 연결된다. LDL 콜레스테롤은 산화되면 혈관 벽에 쌓여 혈관을 좁히고 혈류를 방해할 수 있다. 가지 속 폴리페놀 화합물은 이 과정에서 LDL의 산화를 억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압에 관한 연구도 눈길을 끈다. 국제학술지 Nutrients에 게재된 무작위 위약대조 연구에서는 스트레스 상태에 있으며 혈압이 정상 고혈압 범위 또는 1기 고혈압에 해당하는 성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실험했다. 한 그룹은 가지 분말을, 다른 그룹은 위약을 12주 동안 섭취하도록 하고 혈압 변화를 비교했다.
그 결과, 가지 분말을 섭취한 그룹의 이완기 혈압이 위약군보다 낮게 나타났다. 특히 1기 고혈압 참가자들에게서는 수축기와 이완기 혈압 모두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고 가지 반찬을 혈압약 자리에 앉혀서는 곤란하다. 다만 ‘수분 많은 채소’로만 알고 있던 가지에 다양한 생리활성 성분이 들어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가벼운데, 속은 제법 알차다

항산화 성분 외에도 가지를 식탁에 올릴 이유는 충분하다. 생가지 100g의 열량은 약 25kcal로, 대부분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식이섬유도 함께 챙길 수 있다. 접시에서는 제법 부피를 차지하지만 열량 부담은 적은 편이다.
칼륨도 빼놓을 수 없다. 체내 나트륨 배출을 돕고 정상적인 혈압 유지에 관여하는 필수 무기질이다. 물론 가지 몇 조각으로 어제 먹은 라면의 나트륨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낮은 열량으로 칼륨과 식이섬유를 보충할 수 있다는 점은 가지의 분명한 장점이다.
어떻게 먹느냐도 중요하다

가지의 영양을 더 잘 챙기려면 조리법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름을 얼마나 쓰는지, 물에 삶는지 수증기로 찌는지에 따라 섭취하는 성분과 열량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 기름은 적당히, 풍미는 충분히
가지에는 카로티노이드 등 일부 지용성 성분도 들어 있어 기름과 함께 조리하면 이들 성분의 흡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올리브유를 적당량 두르고 굽거나 볶으면 영양과 풍미를 함께 챙길 수 있다.
고기 요리에 곁들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가지의 식이섬유는 담즙산과 콜레스테롤 대사에 관여해 기름진 육류와 함께 먹을 때 지방 섭취로 인한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름의 양은 조절해야 한다. 가지 과육은 미세한 공간이 많은 다공성 구조라 조리 과정에서 기름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적당량은 풍미를 살려주지만, 과하게 두르고 오래 볶거나 튀기면 지방과 열량도 덩달아 늘어날 것이다.

2. 부드럽게 먹고 싶다면, 삶기보다 찌기
가지의 간판 성분인 안토시아닌은 물에 쉽게 녹는 수용성이다. 물에 넣고 푹 삶거나 오래 끓이면 껍질 속 안토시아닌이 조리수로 빠져나갈 수 있다. 가지를 부드럽게 즐기고 싶다면 물에 데치는 대신 수증기로 찌는 방식을 활용해 보자.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가지를 찐 뒤 총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함량, 항산화 활성이 높게 나타난 바 있다.
꼭지에도 쓰임새가 있다

과육과 껍질에만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손질할 때 무심코 잘라 버리는 가지 꼭지에도 오래된 쓰임새가 있다. 한의학에서는 가지 꼭지를 ‘가체(茄蒂)’라는 이름의 약재로 활용해왔다. 관련 기록에는 입안에 생긴 부스럼이나 치통 등을 다스리는 데 쓰였다고 전해진다.
민간에서는 꼭지를 깨끗이 씻어 말린 뒤 물에 달여 차처럼 마시거나, 미지근하게 식힌 물로 입안을 헹구기도 했다. 평소 버리던 부분까지 활용해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지에게도 재심의 기회를

그렇다고 가지 한 접시가 건강을 극적으로 바꿔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보랏빛 껍질의 항산화 성분부터 식이섬유와 칼륨까지 알고 나면, 식감 하나로 외면하기에는 아쉬운 채소다.
늘 먹던 가지 반찬이 취향에 맞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기름을 적당히 두르고 구워 보는 건 어떨까. 가지에게 한 번쯤 재심의 기회를 줄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