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스캐너=송나리] "오늘 끝까지 달려볼까?"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이렇게 제안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 ‘어우, 내일 스케줄은 어쩌려고 저러나’, ‘몸 상하게 왜 그러지?’ 같은 현실적인 걱정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어라 마셔라"하며 취하기 위해 마시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 과한 음주 문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과거형이 되고 있다.
실제로 요즘 대학 축제나 힙한 팝업스토어, 혹은 트렌디한 을지로와 성수의 바(Bar)에 가보면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잔을 부딪치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액체가 꼭 알코올이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잔 속에서 빛나는 것은 알코올 도수가 ‘제로’에 가까운 논알코올 와인이거나 무알코올 맥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술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니다. 취하기 위해 마시던 시대가 가고, 즐기기 위해 마시는 시대가 온 것이다.
술은 줄고, 선택지는 늘었다

국내 주류 소비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국세청 연도별 주세 신고 현황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주류 출고량은 315만 1,000㎘(킬로리터)로 집계됐다. 이는 2014년 380만 8,000㎘ 대비 17.3% 감소한 수치로, 한국인들이 마시는 술의 양 자체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으로 따져도 2022년(363만 8,562㎘) 이후 2년 연속 줄어드는 추세다.
그렇다면 술이 빠져나간 자리는 누가 채우고 있을까? 바로 무알코올과 논알코올 주류 시장이다. 2026년 5월 유통업계 발표에 따르면, 올해 1~4월 이마트와 트레이더스의 논알코올 맥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2.5% 증가했다. 롯데마트 역시 같은 기간 논알코올 와인 매출이 17.2% 늘었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이 시장을 견인하는 ‘큰손’이 바로 2030세대라는 점이다. 실제 구매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논알코올 와인 구매자의 40.3%, 논알코올 맥주의 41.6%를 2030세대가 차지했다. 2030에게 ‘술기운 없는 술’은 더 이상 대체재가 아니다. 이미 하나의 취향이자 새로운 기본값이 되고 있다.
절주 트렌드 ‘소버 큐리어스’

이러한 최근의 변화를 설명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다.
이는 술을 무조건 끊자는 의미라기보다, 내가 정말 원해서 마시는 것인지 한 번쯤 돌아보자는 태도에 가깝다. 분위기에 휩쓸려 마시기보다, 자신의 컨디션과 상황에 맞춰 음주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제는 단순히 취하는 즐거움보다, 다음 날의 컨디션까지 고려해 음주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무알코올 음료가 운전이나 임신 등으로 인해 술을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대체재에 가까웠다면, 최근의 무알코올 음료는 술을 마실 수 있음에도 스스로 마시지 않기를 선택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절주? 내일의 컨디션을 위해

젊은 소비자들이 술을 마시는 방식을 바꾸는 흐름의 중심에는 ‘건강’이 자리 잡고 있다.
예전의 건강 트렌드는 단순히 체중 감량이나 식단 관리에 그쳤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웰니스(Wellness)의 영역은 훨씬 넓고 정교하다.
수면의 질, 다음 날의 컨디션, 업무 집중력, 얼굴과 몸의 붓기, 매일 지키는 운동 루틴, 심지어 일상의 미세한 감정 상태까지 모두가 관리 대상이 됐다. 그리고 술은 이 모든 항목과 예상보다 깊게 연결되어 있다.
안전한 도수는 ‘0도’

우리가 무심코 넘긴 술 한 잔의 대가는 생각보다 즉각적이고 혹독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공식 발표를 통해 “알코올 섭취의 안전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No safe level of alcohol consumption)”는 메시지를 강조한 바 있다. 알코올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이며, 암 발생 위험은 음주량이 증가할 수록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알코올은 잠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수면의 질과 밀접한 렘(REM) 수면을 감소시키고 수면 구조를 흐트러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다음 날 피로감이 커지고 집중력과 인지 수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매일 아침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샷을 찍으며 자기 관리에 몰두하는 2030 세대에게, 다음 날을 숙취와 두통으로 통째로 날려버리는 음주 행위는 '내 몸과 루틴에 가하는 가성비 최악의 선택'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혈당과 식욕도 흔들린다. 알코올은 간이 새로운 포도당을 만들어 혈당을 유지하는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복 상태에서는 간이 혈당 유지보다 알코올 대사를 우선하면서 혈당 조절이 흔들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음주는 음식 섭취량을 늘릴 수 있으며, 특히 고열량·고지방 음식 선택 가능성을 높여 에너지 과잉 섭취와 대사 리듬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0도와 60도 사이

트렌드의 흐름을 짚어보면, 젊은 세대의 이러한 절주 경향은 술 자체를 거부하는 '금욕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자신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알코올 섭취를 관리하는 영리하고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에 가깝다.
논알코올 주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와중에도, 아이러니하게 위스키 같은 고도수의 프리미엄 주류 매출은 오히려 함께 증가하고 있다. 얼핏 모순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들의 음주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친구들과 가볍게 대화하며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평일 저녁이나 홈파티에서는 다음 날의 컨디션과 웰니스를 지키기 위해 '논알코올'을 선택한다.
반면 정말 특별한 날, 가치 있는 한 잔을 마시고자 할 때는 비싸고 도수가 높은 '프리미엄 위스키'를 온전한 맛과 향을 즐기는 것이다.
맨정신이 제일 힙해, 눈부신 우리의 밤

이제 유통 매대의 풍경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논알코올 맥주 품목은 두배 이상 늘어났고,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와인 매장에는 아예 '논알코올 와인 전용 존'이 생겨났다. 주류 기업들 역시 대학 축제와 팝업 공간에서 늦은 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무알코올 음료 마케팅에 힘을 싣고 있다.
취하지 않는 밤이 힙해졌다는 것은, 술 없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필름이 끊긴 채 다음 날 기억나지 않는 대화보다, 맑은 정신으로 서로의 눈을 맞추며 웃고 떠드는 밤이 오히려 더 선명하고 오래 남는 경험이 된 것이다.
오늘 밤은 취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어쩌면 지금 가장 힙한 밤은 맨정신으로 더 오래 즐기는 밤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