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스캐너=송나리] 요즘 건강 콘텐츠를 보다 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채소가 있다. 바로 ‘토마토’다. 저속노화 식단을 대표하는 식품으로 자리 잡더니, 이제는 아침 식사로 토마토를 챙겨 먹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토마토는 어제오늘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한 슈퍼푸드가 아니다.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라는 서양의 속담이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건강 식품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토마토가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속노화 시대, 수많은 채소 가운데서도 토마토가 유독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빨간 방패라 불리는 토마토

우리 몸은 숨을 쉬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활성산소를 만들어낸다. 적당한 수준의 활성산소는 면역 기능과 세포 활동에 도움을 주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많아지면 문제가 된다. 세포와 DNA, 단백질을 손상시키고 만성 염증을 유발해 노화를 앞당기기 때문이다. 흔히 노화를 ‘몸속이 녹스는 과정’에 비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토마토에는 ‘라이코펜’이라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 토마토의 붉은색을 만드는 이 성분은 활성산소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하며, 체내 염증을 조절하는 과정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무르시아대학교의 연구에서도 토마토주스를 꾸준히 섭취한 참가자들에게서 혈중 염증 지표인 CRP 수치가 유의하게 감소한 것이 확인됐다. 이는 토마토 속 라이코펜의 항염 효과를 뒷받침하는 결과로 해석된다.
혈관 청소부, 라이코펜

우리 혈관은 활성산소와 염증의 영향을 가장 민감하게 받는 곳 중 하나다. 특히 LDL 콜레스테롤은 산화되면 혈관벽에 달라붙어 플라크를 만드는데, 이는 동맥경화와 심혈관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마치 수도관 안쪽에 찌꺼기가 조금씩 쌓여 좁아지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라이코펜은 LDL 콜레스테롤의 산화를 억제해 혈관 손상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실제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의 무작위 대조시험에서는 심혈관질환 환자들이 매일 7mg의 라이코펜 추출물을 섭취했을 때 혈관 확장 기능이 약 53%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혈관질환 위험을 살펴본 연구도 있다. 대규모 메타분석에 따르면 라이코펜 섭취량이 높거나 혈중 농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뇌졸중 위험은 26%, 심혈관질환 위험은 14%, 전체 사망 위험은 37%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암세포가 싫어하는 빨간 채소

암세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양분과 산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일정 크기 이상으로 자라기 시작하면 주변에 새로운 혈관을 만들며 세력을 넓혀간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만의 보급로를 까는 셈이다. 이를 '신생혈관 형성(Angiogenesis)'이라고 부른다.
라이코펜은 암세포의 성장 과정에 개입해 이 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다. 국제학술지 Nutrients에 게재된 폴란드 연구에 따르면 라이코펜이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고, 혈관 신생과 전이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와 함께, 토마토 제품을 자주 섭취하는 사람들에게서 전립선암 위험이 더 낮게 나타났다는 하버드대학교의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토마토를 먹는다고 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라이코펜이 암과 관련해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잇몸 건강의 친구, 토마토

잇몸은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쉽지 않고, 치주염 역시 연령이 높아질수록 흔하게 나타나는 질환 중 하나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잇몸 건강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토마토의 비타민C와 라이코펜은 잇몸 건강에도 긍정적 시너지를 발휘한다. 비타민C는 체내 콜라겐 합성을 도와 잇몸 조직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며, 라이코펜은 항염 작용을 통해 구강 내 박테리아가 유발하는 염증 반응을 억제한다.
최근 미국에서 진행된 대규모 연구에서도 라이코펜 섭취가 충분한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 대비 중증 치주염 위험이 약 67%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토마토와 방울토마토, 뭐가 더 좋을까

토마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한 번쯤 나오는 질문이 있다. 일반 토마토와 방울토마토 중 무엇이 더 건강에 좋을까?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영양 밀도만 놓고 보면 방울토마토가 우세하다는 분석이 있다. 국립농업과학원에 따르면 방울토마토 100g당 비타민A 함량은 일반 토마토보다 약 2.4배 높고, 항산화 성분도 4~6배가량 더 풍부하다. 이는 알이 작은 방울토마토 특성상 껍질 비율이 높아, 껍질에 풍부한 영양소를 더 많이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먹는 방법

토마토를 가열하면 단단한 세포벽 구조가 부드러워지면서 라이코펜의 이용률이 높아져 더 효율적으로 섭취가 가능하다. 미국 코넬대학교 연구팀은 토마토를 87℃에서 가열했을 때, 우리 몸이 활용할 수 있는 라이코펜의 양이 최대 35%까지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여기에 올리브오일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라이코펜은 기름에 녹는 지용성 성분으로 올리브오일과 함께 조리해 먹으면 체내 흡수율이 더 높아진다. 생토마토만 먹었을 때보다 올리브오일을 곁들인 토마토를 섭취했을 때 혈중 라이코펜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마지막으로 토마토는 껍질채 먹는 편이 좋다. 라이코펜은 과육뿐 아니라 껍질에도 적지 않은 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토마토가 특별한 이유

매년 수많은 영양제와 트렌디한 슈퍼푸드가 쏟아지지만, 정작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는 식재료는 많지 않다. 토마토는 그 중 항상 손꼽히는 핵심 식재료 중 하나다. 그 이유는 다양한 건강상 이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매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속노화 식단의 핵심은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냉장고 한쪽에 늘 있던 토마토 한 알을 조금 더 자주 꺼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일 아침 식탁 위에는 붉은 방패를 하나씩 올려두는 것이 어떨까. 의사의 얼굴은 파랗게 질릴지 몰라도, 몸은 그 선택을 꽤 반가워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