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스캐너=양민영] “감기가 왜 이렇게 오래가지?”, “날이 풀렸는데도 병원에 사람이 많더라.”
날씨는 따뜻해졌는데 몸은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큰 일교차와 건조한 공기, 미세먼지까지 겹치면서 면역력이 흔들리기 쉬운 봄 환절기가 찾아왔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이 시기에는 감기와 독감, 각종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이 다시 늘어나곤 합니다. 겨울이 끝났다고 안심하기엔 아직 바이러스의 위험이 남아 있어요.
이런 가운데 최근 흥미로운 연구 하나가 발표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미녀의 과일, 여성 건강 과일로 알고 있는 석류가 독감 바이러스와 일부 감염성 바이러스의 활동 억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인데요. 한때 갱년기 건강식품 정도로만 알려졌던 석류는 이제 항바이러스 연구부터 항산화, 혈관 건강까지 과학적 관점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작고 붉은 알갱이 속에 생각보다 꽤 많은 과학이 숨어 있었던 거예요.
바이러스를 막는 ‘푸니칼라진’

석류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푸니칼라진’이라는 폴리페놀 계열 화합물 때문입니다. 석류 껍질과 과육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이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 물질로 알려져 있는데요. 최근 항바이러스 연구 분야에서도 흥미로운 물질로 떠오르고 있어요.
2024년 이란 골레스탄 의과대학 연구팀의 실험에 따르면 푸니칼라진이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의 세포 감염 과정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연구진은 세포 실험에서 푸니칼라진이 바이러스의 혈구응집 작용을 억제하고 세포 표면에 부착되는 과정 자체를 방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요. 쉽게 말해 바이러스가 세포 표면에 붙어 문을 여는 과정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는 셈이에요.

석류의 항바이러스 잠재력은 독감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2017년 영국 카디프대학교 연구에서는 석류 추출물이 헤르페스 바이러스 억제 효과를 보인다는 결과가 보고됐고, 또 일부 연구에서는 HIV-1 바이러스의 세포 침투를 방해할 가능성도 제시된 바 있어요. 이런 결과는 석류의 폴리페놀 화합물이 바이러스가 세포에 달라붙거나 내부로 들어가는 초기 감염 단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자연 식물에 들어 있는 화합물이 새로운 항바이러스 약물 개발의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에요. 실제로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보이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푸니칼라진처럼 다른 방식으로 바이러스의 감염 단계나 복제 과정을 방해하는 물질이 차세대 항바이러스 후보로 연구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슈퍼 항산화 과일로 불리는 이유

석류의 진짜 강점은 바이러스 연구보다 더 기본적인 곳에 있습니다. 바로 항산화 성분의 밀도입니다. 석류에는 앞서 이야기한 푸니칼라진을 비롯해 엘라그산, 안토시아닌, 플라보노이드, 갈로탄닌 등 다양한 생리활성 물질이 들어 있는데요. 이들은 모두 폴리페놀 계열 항산화 물질로, 체내에서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 세포가 산화 스트레스로 손상되는 과정을 늦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항산화 화합물은 단순히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지난해 국제 학술지 Food Science & Nutrition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석류 속 폴리페놀 화합물이 염증 신호 전달 경로와 세포 생존 신호를 조절해 암세포 증식 억제와 세포 자멸사 유도에 관여할 가능성이 제시됐습니다. 연구진은 석류 성분이 다양한 암 관련 신호 경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죠.
이처럼 석류는 다양한 생리활성 폴리페놀의 집합체에 가까운 식품입니다. 붉은 알갱이 하나하나 속에 들어 있는 작은 분자들이 우리 몸의 산화 스트레스, 염증, 대사 과정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어요.
혈관 건강의 숨은 조력자

최근에는 석류의 폴리페놀이 대사 건강과 심혈관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3년 Nutrients에 발표된 리뷰 연구에서는 석류의 폴리페놀 화합물이 인슐린 저항성, 염증성 사이토카인 수치, 혈압 상승, 혈관 손상 및 지질 산화 변화를 감소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죠.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LDL 콜레스테롤의 산화 억제 효과입니다. 사실 LDL 콜레스테롤은 LDL 자체보다 산화되었을 때 더 문제가 되는데요. 석류 속 폴리페놀은 LDL이 산화되는 과정을 억제하고 항산화 효소 활성을 높여 혈관 보호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석류는 종종 혈관을 지키는 과일로도 소개되곤 해요.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혈압 변화였습니다. 연구 참가자들은 수축기 혈압이 평균 약 5mmHg 감소했는데요. 겉보기에는 작은 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수축기 혈압이 약 5mmHg만 낮아져도 심혈관 질환 위험이 10%가량 감소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큰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여성 건강과 석류의 연결고리

사실 석류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바로 여성 건강식품일 텐데요. 석류가 여성 건강과 연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식물성 에스트로겐 때문입니다. 석류 씨와 껍질에는 엘라지탄닌, 엘라그산, β-시토스테롤 등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작용을 할 수 있는 식물성 화합물이 들어 있어요. 이러한 성분들은 안면홍조, 발한, 수면 장애 같은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인데요. 특히 유방암, 자궁내막암 등 에스트로겐 수용체와 관련된 호르몬성 암 환자의 경우 석류와 같은 식물성 에스트로겐 식품 섭취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어요. 그래서 관련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전문가 상담 후에 섭취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석류, 알고 먹자!

좋은 음식도 결국 어떻게 먹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석류 역시 예외는 아니에요. 석류의 붉은 알갱이 속 씨앗에는 식이섬유와 폴리페놀 성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가장 좋은 섭취 방법은 가공 주스보다는 생과일 형태로 섭취하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섭취량은 생과일 기준 하루 1개 정도이며, 석류 주스는 약 200-240ml 정도인데요. 다만 건강식품이라고 해서 많이 먹을수록 좋은 건 아닙니다. 몇 가지 주의할 점도 있어요.
먼저 당 함량입니다. 석류 자체는 건강한 과일이지만 주스로 만들면 농축되면서 당 섭취량이 빠르게 늘어날 수 있어요. 그래서 과일 자체보다 훨씬 빠르게 혈당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건강 음료라고 해서 여러 잔 마시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건강하다는 이유로 과하게 마시면 오히려 칼로리 폭탄이 될 수 있어요.
붉은 알갱이 속 건강 메시지

석류를 둘러싼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한때 갱년기 건강식품 정도로만 알려졌던 과일이 최근 그보다 훨씬 다양한 영역에서 과학적 관심을 받고 있죠. 바이러스 감염 과정에 관여할 수 있는 폴리페놀 화합물, 강력한 항산화 성분, 혈관 건강과 대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생리활성 물질까지. 붉은 알갱이 속에 다양한 영양 성분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석류가 만능 식품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의 상당수는 세포 실험이나 초기 동물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석류를 먹는 것만으로 특정 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석류를 특별한 건강식품으로 기대하기보다 건강한 식단 속에 더하는 하나의 좋은 과일로 즐기는 자세입니다. 다양한 과일을 섭취하고, 가공식품보다 자연식품을 선택하는 식습관 속에서 석류 역시 충분히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어요.
몸의 리듬이 흔들리고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이때,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균형 잡힌 식사, 충분한 수면,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꾸준히 섭취하는 것. 그리고 그 식탁 한편에 붉게 빛나는 석류 하나가 놓여 있다면 조금 더 좋겠죠? 작은 과일 하나가 건강의 모든 답이 될 수는 없지만 건강한 생활을 향한 작은 힌트 정도는 충분히 건네줄 수 있습니다.

